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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 어떻게 볼 것인가.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by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20.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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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기업이 빚을 지는 것처럼, 국가도 빚을 질 수 있는가? 그렇다 국가도 빚을 질 수 있다. 국가채무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개인과 기업이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는 것처럼 국가도 부도가 날 수 있을까? 그리고 부도가 날 수 있다면 국가가 채무를 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아닐까? 한 국가에서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국가의 부도는 사회 구성원의 불행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의심과 걱정은 당연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국가채무 때문에 국가가 부도가 날 경우는 극히 드물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가 채무를 지는 것이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다.

 

국가는 국공채의 형식으로 국내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돈을 빌려오는 형식으로 채무를 질 수 있다. 해외에서 빌려온 돈이 많고 국가가 그걸 갚을 능력이 부족하다면, 부도가 날 수 있다. 한국의 대부분의 채무는 국내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부도가 날 위험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경제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개인이 빚 때문에 파산하듯 국가도 파산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한다.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빚을 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이지만 국가가 빚 때문에 파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국가는 조세징수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채무의 원리금 상환에 쓸 돈이 부족하면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국가채무를 갚는 것은 종국적으로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다. 국가가 발행한 국공채를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한, 국가채무는 곧 우리 국민이 자기 자신에게 진 빚인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빌려준 돈 때문에 자기가 파산할 리는 만무한 것이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또한 국가채무는 어떤 의미에서 바람직하다. 국가채무를 불경기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빚을 얻어도 된다. 정부는 여러가지 거시경제 목표를 추구한다. 높은 고용 수준, 물가안정, 국제수지 균형, 적절한 성장률 등이 그 목표들이다. 어느 시점에서 총수요가 부족한 탓으로 성장률이 둔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졌다고 하자. 정부는 여러 가지 정책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첫째는 감세정책이다. 민간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수요를 확대하려면 근로소득세율을 내리는 게 좋다. 기업의 투자수요를 증진하려면 법인세율을 내리거나 투자액수에 비례해서 세액을 깎아줄 수 있다. 둘째는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정책이다. 병원을 짓거나 도로를 새로 뚫는 데 정부가 돈을 지출하면 직접 총수요를 확대할 수 있다. 이것은 이론적·경험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정책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할 경우 재정적자가 난다는 것이다. 불경기에는 기업의 단기순이익이 줄어들고 실업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조세수입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런 판국에 또 감세를 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한다면 큰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적자를 메우려면 정부는 국공채를 발행해서 차입을 해야 한다. 차입 그 자체가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 국가부채가 증가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또 정당한 일이기도 하다. 국가채무 증가가 무섭다고 불경기를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국가가 불경기에 빠지면 기업들의 단기순이익이 줄어들고 실업자가 늘어난다. 그러면 가계는 소득을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축소한다. 이 축소한 투자와 가계의 소비 축소는 또 다른 실업자의 양산과 기업의 투자 축소로 이어진다. 그런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정부는 빚을 내서 공공사업을 확장하고 실업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가계소득이 늘어나고 늘어난 소득은 소비로 이어진다. 기업이 돈을 벌고 투자를 확장하면서 실업자수가 감소한다. 이런 식으로 불경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때론 국가가 빚을 지는 것이 정당하다.

아주 운이 좋은 경우에는 불경기에 대처하기 위해 차입한 국가채무가 저절로 없어지기도 한다.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로 총 수요가 늘어나 경기가 반전되면 기업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취업자의 수도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 그러면 납세자의 수와 소득이 올라가 조세수입이 저절로 늘어난다. 만약 조세수입이 차입금만큼 늘어난다면 그걸로 빚을 갚으면 된다. 이것을 경제학자들은 '부채(負債)의 역설'이라고 하는데 이런 행복한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아주 배제하기도 어렵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하지만 만약 정부가 재정적자가 두려워서 빚을 지지 않으면 더 큰 불경기를 확산할 수도 있다. 

정부가 재정적자와 그것을 메우기 위한 신규 차입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정반대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불경기에는 조세수입이 줄어든다. 지출을 줄이기 않으면 재정적자가 나게 마련이다. 그러니 빚을 얻지 않으려면 세율을 올리거나 지출을 줄이거나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 불경기에 세율을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할 수 없이 재정지출을 줄여 적자를 없앤다고 하자. 그러면 '부채의 역설'이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정부지출을 줄이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총수요가 더 줄어든다. 기업은 생산량을 줄이고 종업원을 해고한다. 실업자가 늘어나면 조세수입은 더욱더 줄어들고 실업 대책 등 재정지출 압박은 더욱 커진다. 지출을 줄여도 재정적자는 계속되고, 빚을 내지 않으려면 재정지출을 다시 더 줄여야 한다. 처음부터 빚을 얻어 경기부양책을 쓰는 경우보다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되고 재정적자는 적자대로 점점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재정적자를 두려워해서 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이면 더 큰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불경기에 빠졌을 때 국가채무를 만들어서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이 경우에는 더욱 바람직하다. 빚은 잘못쓰면 사회악이지만, 이롭게 쓰면 더 큰 문제를 방지하거나 때론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국가채무가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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