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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리뷰/책, 생각 정리함

조세정의 실현이 어려운 이유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by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20.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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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에서 세금이 무엇이고, 왜 세금을 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봤다.

그리고 정의롭게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서는 개별 납세자들의 능력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는 '능력에 따른 조세부담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말했다. 개별 납세자들의 경제적 능력을 측정하는 지표로 소득, 재산, 소비를 이용한다고 까지 이야기했다.

 

그런데 개별 납세자들의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사용되는 세 가지 지표도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는 실제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정의롭게 세금을 징수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1. 소득

소득은 일정 기간 동안 어떤 사람이 벌어들인 수입과 그것을 얻기 위해 지출한 비용의 차액이다. 소득이 경제적 능력의 가장 확실한 지표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국가는 소득을 지표로 삼아 소득세를 징수한다. 그러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소득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소득은 그 원천과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민간기업의 노동자와 국가 공무원들은 근로소득을 얻는다. 의사, 변호사에서 동네 중국음식점과 구멍가게에 이르기까지,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업소득을 얻는다. 금융기관에 자산을 맡긴 사람은 이자소득을, 주식을 보유한 사람은 배당소득을 얻는다. 부모를 잘 만난 사람은 상속과 증여를 받기도 하고 운이 좋은 사람은 카지노 경마장에서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다. 수천만 명의 시민들이 이처럼 다양한 원천에서 얻는 다양한 종류의 소득을 전부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제학 세계의 합리적 개인은 이기적인데, 이기적인 개인이 세금 많이 내는 걸 즐거워할 리는 없다. 사람들은 법이 허용하는 최소한의 세금을 내려고 하는데, 세법의 허점을 이용해서 세금을 줄이는 것을 기업인들은 절세(節稅)라고 한다. 들킬 염려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들킬 경우 당할 불이익이 그리 크지 않을 때는 아예 소득을 감추어 탈세를 한다. 국세청이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하고 세무조사를 한다고 해도 이걸 다 찾아낼 수는 없는 일이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우선 소득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합리적이라고 쓰고 이기적이라고 해석하는 개인들은 법이 허용하는 최소한의 세금만을 내고 싶어 한다. 우리 누구도 세금을 많이 내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세금을 줄이기 위한 꼼수들을 많이 사용하고, 국세청은 이러한 사람들을 전부 잡아들이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소득은 그 자체로서 납세능력의 척도가 되기 어렵다.

소득이 그 자체로서 납세능력의 척도가 되기 어려운 요소는 또 있다. 똑같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라도 처한 상황이 다르면 납세능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연봉 1억 원을 받는 증권회사의 유능한 직원이 둘 있다고 하자. 그런데 하나는 독신인데 다른 하나는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는 6남매의 장남이며 아내와 아이 셋이 딸려 있고, 중증 장애인 동생까지 돌본다고 하자. 두 사람은 소득이 같지만 납세능력은 천양지차다. 독신 직원은 소득세를 다 내고도 스포츠카를 몰고 다닐 만큼 여유가 있겠지만 가련한 6남매의 장남은 아마 세금을 낼 여유가 거의 없을 것이다. 소득세는 물론 이런 요소를 고려한다. 부양가족의 수, 자녀의 학비, 부양가족의 장애 여부 등등을 고려해서 일정액을 과세 대상에서 공제하고 세액을 감면해주는 장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고려해 주는 일은 매우 번거로우며, 이런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같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라도 처한 상황이 다르면 납세능력이 달라질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소득세는 문제가 많다. 과세의 대상인 소득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어렵고 징수 비용도 많이 들어가며 탈세로 표현되는 납세자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2. 재산

 

납세자의 능력을 나타내는 또 다른 지표는 재산이다. 재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는 경제적 능력의 확실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재산이 많을수록 납세능력이 크다는 것은 의심의 가치도 없다. 그런데 이런 재산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문제점이 존재한다.

 

첫째, 재산은 과거 소득의 산물이다. 소득세 징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라면 재산을 형성하는 데 들어간 돈은 모두 소득세를 납부한 '세후 소득'(歲後所得)이다. 그 재산으로 임대료나 이자소득을 얻으면 거기에 또 소득세를 매긴다. 그런데도 그것도 모자라 보유재산 그 자체에 또 세금을 부과한다면, 사회적·개인적으로 바람직한 행위인 저축과 투자를 이중 삼중 '처벌'하는 셈이다. 그러니 반발이 없을 수 없다.

둘째, 재산의 가치는 거래가치다. 재산에 일정한 가치가 들어 있는 게 아니다. 토지든 건물이든 주식이든, 재산의 현재 가치는 그것이 미래에 가져다줄 소득이 얼마나 큰가에 좌우된다.....(요약).... 어떤 재산이 미래에 얼마만 한 소득을 안겨줄 것인지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요약)...

셋째, 재산이 가치 있는 것은 그것이 미래에 소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산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결국 미래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이야기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소득을 얻어서 세금을 내고 난 후 저축한 돈이나 투자한 부동산, 주식 등이 재산이다. 그런데 저축한 돈데 다시 세금을 매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재산은 미래에 얼마만큼의 소득을 가져다 줄지 예측할 수 없는데,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소득에 대해서 세금을 매긴다는 것은 부당하다.

 

3. 소비

소비 또한 개인의 경제적인 능력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소비하는 지를 보면 그 사람의 경제적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세는 상품에 매기는 세금이다. 소비자가 상품을 구입할 때 물건값과 함께 세금을 지불하면 판매자가 국세청에 납부하는 간접세다. 종류는 무척 다양하다. 특수한 예외를 제외한 모든 상품에 대해 판매 가격의 10%를 세금으로 덧붙이는 부가가치세, 건강에 해로운 기호품에 매기는 주세와 담뱃세, 자동차를 비롯한 값비싼 소비재에 부과하는 특별소비세 등등 소비에 부과하는 세금의 종류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러나 원리는 동일하다. 소비하는 사람은 세금을 낸다는 것이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소비세는 모든 시민이 신분과 지위의 관계없이 소비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세금을 내야 한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세금을 내는 사람이 얼마만큼의 세금을 내는지 모르고, 심지어 세금을 낸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징수가 편리하다. 또 소비세는 누가 얼마를 소비하는지, 세금을 제대로 내는지를 감시하는 비용도 들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이다.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세금 징수법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소비세는 가난한 사람에게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역진세(逆進稅)다.

연봉이 10억 원인 펀드매니저와 연봉 5천만 원인 평범한 샐러리맨이 있다고 하자. 애가 둘 딸린 이 샐러리맨이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2천만 원 넘게 저축하기는 어렵다. 부가가치세가 세금을 포함한 상품 가격의 10%라고 가정하면 그는 소득의 60%를 소비하면서 연간 3백만 원을 세금으로 낸다. 이 세금은 연봉 5천만 원의 6%다. 소득세로 치면 그는 6%의 소득세율을 적용받은 셈이다.

펀드매니저는 씀씀이가 커서 연간 3억 원을 소비하고 나머지를 저축하거나 투자한다. 샐러리맨보다 열 배나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부가가 지세도 열 배나 많은 3천만 원을 내게 된다. 그런데 3천만 원은 연봉 10억 원의 3%에 불과하다. 소득세로 치면 연봉이 스무 배나 많은 펀드매니저가 연봉 5천만 원짜리 샐러리맨보다 훨씬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결과가 된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정리하면 이렇다. 소득에 대해서는 과세 대상의 소득이 얼마만큼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부족하고, 세금을 내기 싫어하는 납세자들이 탈세를 할 때 그에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점, 그리고 세금을 징수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문제점이 있다.

재산에 대해서는 이미 소득세를 징수하고 남은 재산에 대해서 또다시 세금을 징수하는 형식이 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반발이 일어날 수 있고, 미래에 발생할 가치를 예측해서 세금을 부과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소비에 대해서는 징수가 편리하고, 경제적이고, 평등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부자에 비해 가난한 사람에게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조세정의를 실현시키기란 현실적으로 정말 어려운 문제가 있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국내도서
저자 : 유시민
출판 : 돌베개 200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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