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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리뷰/책, 생각 정리함

불행하고도 행복한, 모순적인 안진진의 이야기 <모순> 양귀자.

by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24.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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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양귀자

 

성격도, 생각도, 행동도, 외모도 모두 똑같은 쌍둥이로 태어났던 엄마와 이모. 그러나 결혼 후 둘의 팔자는 확연히 달라지고, 둘의 외모나 생각, 성격 또한 완전히 변하게 된다. 불행한 쪽의 자식으로 태어난 안진진.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잦은 술주정과 패악질, 남동생이 일으킨 사고들 때문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던 집안에서 모든것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자아를 보호해왔던 안진진. 25살 어느 날, 인생을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다는 생각에 황망하게 뺨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며 앞으로의 인생을 온 생애에 걸쳐 살아내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렇게 온 생애에 걸쳐 삶을 살아내겠다고 다짐한 그녀 앞에 두 남자가 나타난다.

아버지와 비슷하게 나를 성을 붙여서 안진진, 하고 부르는 남자. 감수성이 풍부하고 꽃을 사랑하는 가난한 사진가. 김장우.

이모부와 비슷하게 모든 것이 그의 인생계획서대로 순탄하게 흘러가는 심심한 남자. 번듯한 직장을 가진 나영규.

자신의 빈약한 인생의 부피를 늘리기 위해 아직 사랑에 빠지지도 않은 두 남자 중 한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심하는 안진진. 진짜 사랑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고민하여 점점 자신의 짝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안진진. 그런 그녀의 이야기다. 

 

25살 안진진의 성격 형성과 사고방식을 이해하려면, 안진진의 주변 인물들을 봐야하고 그러려면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 그리고 이모와 이모부를 봐야한다. 패악질을 부리지만 누구보다도 자식들과 아내를 사랑하는 자신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면서 불행을 과장하는 어머니지만 도리어 그 불행으로 인해 누구보다 생명력이 넘치게 살아가는 어머니. 인생의 계획표대로 순탄하게 항해하며 자식들을 챙기는 이모부지만, 거기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이모. 그리고 엇갈린 두 자매의 인생을 보면서 이모의 자식이었으면 하고 좋지 않은 생각을 해보는 안진진.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은 여러 사람의 생에가 뒤죽박죽 섞여서 하나의 인생을 만들어내고, 또 각자의 인생으로 갈라지는 끝없는 굴레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코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그런 인생은 없다. 

또 이 책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각자 나름대로 자기 자신의 불행과 모순을 품고 살아가며 그것을 극복해나가기도, 그것에 순응하기도 한다. 그런 주변 인물들을 보면서 나는 인생은 옳다 그르다로 나눌 수 없는 알 수 없는 무엇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 중 누구도 그 모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느꼈다. 

 

한 사람의 모순적인 인생의 이야기에서 삶은 어떤 것인지를 조금은 알 수 있게 해주는 소설. 그 이야기를 엿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어느 날 아침 문득, 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한 번만 더 맹세코, 라는 말을 사용해도 좋다면 평소의 나는 이런 식의 격렬한 자기반성의 말투를 쓰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열혈한을 만나면 지체 없이 경멸해버리고 두 번도 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어느 날 아침,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부르짖었다. 내 인생을 위해 내 생애를 바치겠다고, 그런 스스로를 향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사이 더욱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눈물이, 기척도 없이 방울방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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