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노력했다. 평생 동안 노력했다.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깨끗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결정을 내리고 나자 놀랄 정도로 희망이 솟구쳤다. 그냥 끝내버리기만 하면 그 오랫동안의 슬픔에서 자기를 구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자신이 스스로의 구원자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어떤 법도 그에게 계속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의 삶은 여전히 자기 것이었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어떻게 이걸 깨닫지 못했을까? -p572
거의 1,000 장이 넘어가는 길고 긴 페이지에 기구한 운명을 살아낼수밖에 없었던 가엾은 주드의 생애를 그린 이야기. 이야기 내내 주드를 중심으로 주드의 대학 친구 제이비, 맬컴, 윌럼과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 되는지를 그렸다.
어린시절 고아로 수도원에서 학대 당하고, 루크 수사와 함께 수도원을 나와서도 성적으로 착쥐와 학대를 당하던 주드, 그는 16살이 되던 해에 그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그마저도 수도원에서 도망치던 도중 만난 트레일러 박사에 의해 끔찍한 성적학대를 또 경험하고 트레일러 박사가 의도적으로 그를 죽이려고 몰은 트럭에 치여 걸음도 잘 걷지 못하는 반 불구가 되어버리는 사건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끔찍한 사건은 그의 생명을 앗아가지 못했다. 병원에서 만난 애너박사에 의해 신체적, 심리적으로 치료되고 안정을 찾아가는 듯 했지만, 애너 박사가 죽고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된 채로 대학에 들어가 윌럼과 제이비, 맬컴을 만나게 된다. 주드는 스스로의 과거를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채 윌럼, 제이비, 맬컴과 다른 친구들을 만나며 그의 대학 시절을 아슬아슬하지만 순탄하게 보내게 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양아들로 입양하고 싶어하는 해럴드와 줄리아를 만나게 되고, 그는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이 모든 행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그가 스스로 자기는 거짓된 연기를 하고 있고 언제든 그들이 나의 과거를 알면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아무에게도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주드의 모습이 묘사된다.
주변인들의 과분한 우정에 어쩔줄 몰라 하면서도 그 상황을 지켜내려 노력하고 한동안은 자신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거의 믿게 되는 순간도 오게 된다. 그렇게 주변인들과 잘 지내면서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믿음을 확립해가던 순간, 그는 케일럽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케일럽과 잘못된 사랑에 빠진다. 똑똑하고 지적인 주드와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잘 나가는 디자이너였던 케일럽은 주드와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케일럽과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 주드가 원했던 건 단지 자신도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뿐이었는데, 케일럽은 단지 그의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주드를 만났던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케일럽은 주드를 매춘부로 대했던 모든 유년시절의 남자들과 똑같이 주드를 성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했다. 결국 케일럽은 주드가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라고 느꼈던 그의 아파트에서 그를 죽음의 직전까지 성적으로, 신체적으로 학대해서 주드가 자신은 어렸을 때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을 팔았던 창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일뿐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다시한 번 상기시킨다. 케일럽 사건 이후 주드는 엄청난 수치심과 절망감에 살아갈 이유를 잃는다.
케일럽과의 사건 이후 힘들어하던 주드에게 다시 한번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알려주게 되는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대학시절부터 자신을 인내심 있게 사랑해준 그의 영원한 친구 윌럼. 어떤 사건이 닥쳐도 그의 옆에서 그가 괜찮을 것이라고 그를 다독여준 바로 그 윌럼이었다. 주드와 윌럼은 서로 우정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서로 만나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주드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이 되었다. 윌럼은 아주 친절하고 상냥하고 사려깊다. 주드는 마침내 그와 만나면서 과거를 털어내면 역겨움에 자신을 떠날 거라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애너 이후 한 번도 이야기 하지 못했던 자신의 지옥같은 과거를 윌럼에게 털어놓는다. 윌럼은 그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주고도 주드 곁에 남아 주드를 사랑해준다.
윌럼의 헌신적인 사랑과 주변인들의 변함없는 우정 덕분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된 주드. 하지만 야속하게도 가장 사랑하고 믿었던 윌럼이 교통사고를 당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사건을 겪는다. 가장 의지하던 이의 죽음으로 인해 이제 겨우 살아갈 희망을 얻고 있던 주드는 다시 절망에 빠지고, 이제 그는 자신의 양아버지 해럴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원하지도 않는 하루하루의 인생을 살아내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그마저도 지킬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고는 너무 길고 지루하고 항상 그를 지치게 했던 절망스러운 인생을 스스로 끊어버린다.
읽다보면 주변에 아주 좋은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드가 왜 그렇게 자신은 그런 행운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안타까우면서도 어느정도 공감이 간다. 나도 살아가면서 어느정도 내가 가진 것보다 더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닌데 나를 왜 이토록 사랑해주지 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그리고 내 어두운, 치욕스러운 부분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들킨다면, 진짜 내 모습은 치졸하고 어둡고 욕심많고 더러운 성격의 나라는 것을 들킨다면 그들이 그때도 나를 사랑해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한다.(물론 주드만큼 심하게는 아니지만)
그래서 이건 아주 잠시 나에게 온 꿈 같은 일이고 다시 꿈에서 깨어나면 어린시절의 모텔을 전전하던 시절, 루크 수사, 트레일러 박사, 그리고 그의 고객들에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오고 있음을 마음깊이 두려워하고 자신은 그런 호사를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스스로 너무 굳게 믿고 있어서 이 상황을 망치지 않기만을 바라고 전전긍긍하는 주드가 너무 안타깝다. 그의 유년기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암흑이 도사리고 있어서 이 암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성년기, 장년기의 주드가 있다. 이건 마치 코끼리의 발에 묶여있는 쇠사슬 같은 것이어서, 어렸을 때 벗어날 수 없다고 한 번 그 생각이 정립되고나니, 성인이 되어서는 아주 쉽게 넘어설 수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넘어설 수 없다고 학습되어버린것 같다.
주드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유년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학습된 관념이 얼마나 바로잡기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따지고보면 그의 전 생애를 통틀어서 그가 고통받았던 시기보다 그가 사랑받고 이해받은 시절이 더 많았다. 해럴드와 줄리아가, 윌럼과 맬컴과 제이비와 그의 친구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었다. 하지만 주드는 어린시절의 잘못된 행동양식을 고치지 못했다. 고치려는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누군가 그의 시도를 좌절시켰다. 불쌍한 주드. 안타까울 뿐이다.
'다양한 리뷰 > 책, 생각 정리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행하고도 행복한, 모순적인 안진진의 이야기 <모순> 양귀자. (0) | 2024.10.05 |
---|---|
30일만에 완성하는 단단한 마음가짐 <당신의 첫 생각이 하루를 지배한다> (2) | 2024.10.03 |
유튜브 성공 비결 <유튜브 젊은 부자들> 김도윤 (0) | 2020.03.28 |
불안의 이유 (사랑 결핍), 알랭 드 보통 <불안> (0) | 2020.03.20 |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0) | 2020.03.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