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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의 존재 이유 (모든 독점이 사회악은 아니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by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20.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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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산업에서는 공기업이나 정부투자 기관의 형태로 정부가 기업을 직접적으로 경영하거나 간접적으로 경영을 감독한다. 그런데 이렇게 특정 산업을 정부가 직접 기업을 만들어 경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국가가 기업을 직접 만들어 경영하는 것일까? 흔히들 하는 말마따나 시장에 맡기면 될 텐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른바 자연독점(natural monopoly)이다. 자연독점은 어떤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이나 유통에 관련된 기술적 특수성 때문에 시장에 맡겨두면 불가피하게 독점이 출현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시장에서는 독점기업이 제 마음대로 가격을 통제하면서 고객의 등을 치게 된다. 그래서 민간 경제주체의 선택을 제약하는 국가의 개입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경제학자들도 이것만큼은 '시장실패'(market failure)가 일어나는 예외 영역으로 간주하고 국가의 개입을 허용한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국가가 기업을 만들어 경영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왜 자연독점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연독점은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들어사는 평균 생산비가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산업에서 발생한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자연독점은 철도, 전력, 가스, 상수도, 전화, 우편 배달 같은 산업에서 일어난다. 이것은 모두 '길', '파이프', 또는 '선'(線)과 관련이 있는 '운송산업'이다. 현대 경제학에서 '물류'(物流, logistic)라고 하는 사업에 속한다.

이 산업들은 처음에 길, 파이프, 선 같은 설비를 설치해야 하기에 초기에 엄청난 비용이 발생한다. 그런데 한번 그 비용을 감수하여 설비투자를 해 놓으면 생산비가 감소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자연독점으로 이어진다.

철도를 예로 들어보자. 여러개의 경쟁기업이 각자 철로를 깔고 사업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 이 기업들은 처음에 엄청난 설비투자를 해야 한다. 철로를 놓는 비용은 나중에 태우게 될 승객의 수나 화물의 양과 무관하게 들어간다. 그래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손님이 하루 10만 명인 경우와 1만 명인 경우 한 사람을 수송하는 데 들어가는 평균 비용은 당연히 10만 명인 경우가 훨씬 적다. 따라서 승객을 많이 확보한 회사는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운임을 더 적게 받고서도 버틸 수 있다. 철도회사들은 고객 확보를 위해 피 튀기는 전쟁을 치르겠지만, 이 전쟁의 끝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어느 한 회사가 다른 모든 경쟁자를 축출하고 독점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되고 나면 새로운 기업이 이 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다른 경쟁자의 출현이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다면 이 독점기업은 최대의 이윤을 얻기 위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운임을 결정한다. 본격적으로 고객의 등을 치게 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열차를 타든가 타지 않든가, 선택을 하나뿐이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이러한 이치는 철도뿐만 아니라 다른 물류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래서 이런 분야에서의 독점을 막기 위해서 정부가 독점 공기업을 세워서 정부가 직접 재화나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한다.

 

이러한 이치는 철도뿐만 아니라 송전선, 파이프, 전화선 등을 이용한 전기, 가스, 상수도, 통신 등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이런 분야에서 필연적으로 독점이 출현한다면, 정부는 두 가지 방법으로 여기에 대응할 수 있다. 첫째는 민간 독점을 인정하고 소비자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당하지 않도록 감시 규제하는 것, 둘째는 정부가 독점 공기업을 세워 재화나 서비스를 직접 국민에게 제공하는 방법이다. 민간독점을 인정할 경우 소비자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당했는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이증하기가 쉽지않고, 또 그런 사실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과징금을 물리거나 시정명령을 내리는 것밖에는 달리 규제수단이 없는 데다가, 이런 조치에 대해서 민간 독점기업은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기 때문에 국가가 이것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기가 매우 어렵다. 대부분의 산업 국가들이 이런 산업 분야에 독점 공기업을 세운 것은 바로 그런 사정 때문이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특정 기업이 한 분야의 시장을 독점하면 최대의 이윤을 얻기 위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격을 결정할 위험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엔 소비자의 권익이 침해당해도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독점 기업의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독점은 사회악이다.

그러나 특정 기업의 독점을 막고 소비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정부가 독점으로 공기업을 운영하여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독점은 사회악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때론 독점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도 아무리 독점 공기업으로 소비자들의 권익을 지킨다 해도 독점 공기업은 언제나 소비자를 착취하게 되어있다. 공기업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니라 민간독점을 막기 위한 필요악일 뿐이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국내도서
저자 : 유시민
출판 : 돌베개 200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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