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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리뷰/책, 생각 정리함

사회주의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유시민의 경제학카페>

by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20.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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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30p까지는 경제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경제학이 성립할 수 있었던 기본적인 틀을 이해해야 한다는 걸 설명했다.

31p ~ 45p 까지는 19세기부터 이어졌던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사이의 대립에서 왜 '시장경제'가 승리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계획경제' 에 대한 '시장경제'의 전면적인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대결이라는 도식은 이데올로기적 과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경제는 계획경제다. 아무도 '계획' 을 세오지 않는 국민경제는 있을 수 없다. 1989년을 전후하여 벌어진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은 '계획경제' 일반이 아니라 '중앙통제식 계획경제' 의 종말을 의미한다.

....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경제학의 세계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행복에만 관심을 가지는 이기적 개인들이 산다. 하지만 그들은 해변의 모래알처럼 따로 굴러 다니는 존재가 아니다. 모두가 자기의 행복에만 관심이 있지만, 마찬가지로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다른 개인이 없으면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사람은 서로 의존함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적 존재'라는 말이다. 이러한 상호의존성을 만들어 낸 것은 다름아닌 분업(分業)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쟁의 대립이란, 사실은 사회적 기술적 분업을 조직하는 방법의 차이를 이념으로 부풀린데 지나지 않는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먼저 책에서 유시민 선생님은 엄밀히 정리하면 '시장경제'는 '계획경제' 안에 속하며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다른 것은 '국가와 기업과 가계가 세우는 서로 다른 계획들 사이의 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며, 사회적·기술적 분업을 조직하는 방식' 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계획경제'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이고 '시장경제'는 '분권적 계획경제'이다.

 

계획경제

->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 계획경제

-> 분권적 계획경제 => 시장경제

 

 

그렇다면 '분권적 계획경제'인 '시장경제'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와의 대립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대사회는 고도 분업 사회이고, 고도 분업 사회에 어울리는 경제적 기본질서는 '분권적 계획경제'인 시장경제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은 왜 분업을 할까? 스미스의 말에 따르면 "분업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인간의 어떤 성향에서 매우 천천히 점진적으로 발생한 필연적 결과다"다. 그러한 성향이란 "하나의 물건을 다른 물건과 거래하고 교환하는 성향"이다. 이런 성향이 본능 가운데 하나인지 아니면 이성과 언어의 속성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인간이라면 누구에게서나, 그리고 오직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독특한 것으로서 다른 종류의 동물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다. .....

..... 교환은 재능과 환경이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가 남에게서 필요한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나는 그 대신 그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나에게 필요한 무엇을 손에 넣으려면 남에게 필요한 그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합리적인 경제인'이 하는 일은 언제나 남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자기의 행복을 위한 이기적 행동이다. 교환을 통해 오로지 이기적 욕망의 충족만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자 되는 것이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현대 사회에서 재능과 환경이 다른 '합리적 경제인'들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교환을 한다. 그리고 그 하나의 물건을 다른 물건과 거래하고 교환하는 성향이 필연적으로 분업을 발생시켰다. 분업도 계속해서 발전해서 낮은 수준의 분업에서 높은 수준의 분업으로 발전했고, 이제는 각자가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남의 행동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고도 분업사회가되었다.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는 왜 고도 분업사회에 맞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학파(Freiburger Schule)의 대부 발터 오이켄(Walter Eucken)이 <경제정책의 원리>라는 고전적 저작에서 한 설명을 요약 소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30명으로 이루어진 대가족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1만 평의 땅에서 자급자족경제를 운영하는 이 대가족을, 절대적 권위를 지닌 한 사람의 가부장이 이끈다고 하자. ....(요약).... 그는 한 뼘의 땅과 한 사람의 일손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잘 알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일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도록 정밀한 계획을 짤 수 있다. 한마디로 일상적 경제활동을 성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가부장이 경제활동에 대한 모든 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중앙통제식 계획 경제는 이런 조건에서라면 훌륭하게 돌아갈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수천만 명이 어울려 사는 거대한 고도 산업사회, 예컨데 서기 2001년의 한국을 생각해 보자. 그 사회에서는 2천만 명의 경제활동 인구가 수없이 다양한 작업에 투입된다. ....(요약)....

.... 이 모든 사람들의 활동이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의미있는 일이 되도록 하려면 누군가 개개인의 경제활동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조정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요약)......

 

양(量)의 변화는 질(質)의 변화를 부르게 마련이다. 가부장이 지휘하는 자급자족 경제와는 달리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수천만 명이 서로 의존해서 사는 고도 분업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사회의 생산활동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계획할 수 없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가부장이 지휘하는 씨족단위의 자급자족 경제에서는 모든 것을 중앙통제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수천만,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극도로 분업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것을 중앙통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이것이 중앙통제식 계획경제가 적절치 않은 첫 번째 이유.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는 '이기적 인간'의 본성에도 맞지 않는다. 이 체제를 쉽게 이해하려면 모든 기업이 국영기업이고 모든 노동자가 공무원인 나라를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기서는 국가가 정한 호봉체계에 따라서 일을 잘하든 못하든 같은 봉급을 받는다. 이런상황에서 자기의 행복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 경제인'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직장에서는 적당이 시간을 때우면서 자기 집 뒷마당의 채소밭을 열심히 가꾸는게 최선이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中)

우리 사회(소련)에는 실업이 없다. 게으르거나 직장 규율을 잘 지키지 않아 해고당한 사람들에게도 다른 직장을 준다. 비록 일을 열심히 하지 않거나 무능한 사람이라도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급료를 받는다. 우리는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사회주의의 이점을 악용하는 악질적인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들은 권리만 주장하면서 자기에게 부여된 의무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빈둥거리며 술만 퍼 마신다.

<유시민의 경제학카페>에 인용된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중앙통제식 경제체제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든 적게 하든 정해진 양만이 주어진다. 그 때문에 '합리적인 경제인'이라면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분배만 받으려고 할 것 이므로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에도 어긋난다.

 

 

따라서 결론은 이렇다. 고도 분업사회인 현대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는 적절하지 않다.

 

1. 고도 분업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생산과 소비활동은 너무나 복잡해서, 그 누구도 이것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계획하거나 통제할 수 없기 때문.

2.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는 '이기적 인간'의 본성에도 맞지 않는다.

 

 

결국 '분권적 계획경제'인 시장경제는 숱한 결함을 안고있는 질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보다 더 나은 체제를 찾을수 없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적 기본질서이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국내도서
저자 : 유시민
출판 : 돌베개 200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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