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에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문제아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철학자이자 인문학자.
어쩌다 그의 강의를 들을때마다 나는 잊고 살았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고 괴로워한다. 피하고 싶고 미워하고 싶지만 그럴수가 없는 강신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애써 외면하고 회피하던 내안의 자본주의 체제에 굴복하고 싶은 욕망에 훈계를 가한다. 비겁한 겁쟁이라고 나를 질책한다. 나를 찾기 위해 나섰던 길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려 할 때마다 나를 질책한다.
이번 강의도 그는 내안의 욕망을 들춰내고,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를 찾기 위해 떠났던 길에서 이탈한 나를 채찍질하여 다시금 그 길 위에 오르게 만든다.
모두가 즐겨야 마땅한 자연을 누군가가 선을 그어 독점하고, 그것을 사고 파는 과정을 통해 소수의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서 우리의 불평등이 시작되었다고 루소의 의견을 빌려 말한다. 우리는 모두 유랑하는 존재들이어서 무언가를 소유하기란 불가능한데, 자꾸만 소유를 주장하며 소유하지 않는 자를 억압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이 땅과 물건을 소유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단지 나중에 올 이들보다 먼저 사용하고 있는 것 뿐이라고 그러니 우리가 낯선 곳에 처음가면 환대를 받고 싶듯이, 우리도 나중에 올 이들을 환대해주고 기꺼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구를 하나의 여행지로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곳에 떨어졌고 지구는 단지 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고 느끼고 떠나는 장소일 뿐이다. 그러니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을 많이 쌓았다면 그걸로 충분히 의미있는 인생을 살다 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그것을 부정한다. 이땅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우리는 이땅을 소유했다고, 그러니 이땅의 모든 것들을 통제 할 수 있다고 믿게한다. 애초에 없던 선을 만들어 소유권을 주장하고, 가지지 못한자가 나약한 것이라고 억압한다. 우리는 유랑하는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기에 어딘가에 정착하려한다. 정착은 곧 그곳에 있던 누군가를 몰아내고 이곳에 도착하게 될 다음 유랑자들을 막는 행위다. 정착하려기 때문에 폭력이 발생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낸 이스라엘 사람들 처럼. 기본적으로 우리는 모두 유랑하는 존재란 것을 부정한다면 비극만이 있을 뿐이다.
유랑은 변화를 의미한다. 소유에 집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근본적으로 보면 내것은 없다. 관계를 소유하고, 물건을 소유 할 수 없다. 그저 그것들이 나에게 왔다 가는 것 일 뿐이다. 내 가족, 내 친구들, 내 아이들 까지도. 그러니 왔을 때 소중하게 다뤄주고,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간다고 붙잡거나 질척거려선 안된다.
지금 내 옆에 와있는 모든것들을 소중히하고 감사해야한다.
가진것을 잃게 될까 집착이 일어날 때, 무언가를 더 얻고싶은 욕망이 날 감쌀때.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유랑이 없다면, 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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