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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리뷰/만화, 애니매이션

우주에 남겨진 모든 이에게 바치는 재즈, See you Space Cowboy.

by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25.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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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비밥 - 출처 나무위키

오랜만에 시간이 남아서 그간 보려고 벼르고 있었던 20세기의 고전 명작 애니메이션인 <카우보이 비밥>을 시청했다. 
다 시청한 후 이 작품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약간의 검색을 해 봤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랬던 작품으로, 또는 누군가에게는 진한 여운이 남는 명작으로 기억되는 작품인 것 같다. 나는 둘 중 어느 쪽이었냐고 말해달라면, 후자다. 나에게 카우보이 비밥은 담백하고 잔잔한 여운이 남는,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잔잔한 재즈가 나오는 바에서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시가와 함께 위스키를 마시는 듯한, 낭만적인 느낌의 작품으로 남았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즈를 조금 알아야 한다. 이 작품에는 재즈음악이 많이 나온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나오는 '비밥(BeBop)'이란 용어는 1940년대 등장한 재즈 연주 스타일의 한 장르로 복잡한 화음과 멜로디, 빠른 템포, 그리고 즉흥성이 특징인 연주 스타일이다. '비밥(BeBop)'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카우보이 비밥>은 기존 20세기 작품들이 따르던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서 벗어나, 등장인물 개개인의 특성이 강하고, 불완전하고, 독톡한 캐릭터들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전개 방식도 옴니버스 형식으로 스토리 하나하나가 모두 이어지지는 않지만, 자유롭고 빠르게 전개되는 와중에도 각자만의 고유한 특생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렇기에 처음 작품을 보면 한 회씩 탁탁 끊어지는 스토리 형식에 당황하고, 불친절한 배경설명으로 인해 답답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 답답함과 불편함을 이해하려는 호기심을 갖고 작품을 본다면 분명 얻어가는 게 하나쯤은 있을거라는 확신을 한다. 

카우보이 비밥의 시대적 배경은 2071년, 화성 중심의 태양계 문명이다. 2071년의 인류는 화성, 금성, 목성 등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는 우주개척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행성간을 연결하는 게이트의 오작동으로 폭발한 '하이퍼게이트' 사고의 여파로 달이 파괴되어 달의 파편이 끊임없이 지구에 떨어지는 재앙을 맞는다. 그래서 지구는 거의 멸망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버렸고, 이후 사람들은 화성,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 칼리스토, 에우로파, 금성 등 태양계 행성들과 위성들로 이주해 살아간다. 하지만 새로운 행성들에는 법도, 질서도 없었다. 범죄는 무분별하게 터졌고, 모든 걸 정부가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결국 정부는 범죄자를 잡아온 사람들에게 현상금을 주겠다는 제도를 만들고 그들을 현상금 사냥꾼, 다른 말로 '카우보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 작품은 비밥이라는 우주선에 모여서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우주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카우보이에 관한 이야기다. 

과거 레드 드래곤이라는 범죄조직에 속해 있었지만,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죽음을 위장하고 신분을 숨긴 채 죽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남자 '스파이크'
자신이 속한 경찰조직 ISSP에서 배신당한 뒤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전직 경찰 '제트'
과거 우주사고를 당해 치료를 위해 냉동캡슐에 얼려졌다 54년만에 이름도, 기억도 모두 잊은 채 깨어난 여자 '페이 밸런타인'
폐허가 된 지구에서 살다가 비밥호로 합류하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듯한 모습의 천재해커 '에드'
그리고 실험으로 인해 인간보다 지능이 높은 천재 강아지 '아인'
이렇게 독특한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각기 다른 서로의 사연을 갖고 각자의 후회와 고독을 품은 채 비밥호에 모여서 생활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바로 카우보이 비밥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주는 느낌이 정말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기술적으로는 최첨단의 미래 SF세계를 다루는 데, 어딘가 모르게 모든 것들이 낡아 있다.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날아다니고, 해커들이 넘쳐나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닥다리 모니터와 타자기를 사용하고, 치직거리는 통신 음성과 1940~50년대의 거리를 연상케 하는 네온사인과 간판들의 모순적인 디스토피아적 배경이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어우러지며 낭만적이고 우울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듬뿍 발산한다. 이는 미래적 외형을 갖췄지만 정작 안에는 옛 감성과 상처가 가득한 인류를 상징하는 것만 같다. 미래를 살아가는 인간이 여전히 과거에 기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할까. 아무튼 묘하다. 한 번쯤 시청하기를 권한다. 

 

카우보이 비밥의 여운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유튜브에서 비밥의 내용과 후회에 관해, 후회를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에 관해 잘 설명한 글이 있어서 몇 자 더 적어본다. 지금부터 적을 글은 아래 유튜버의 해석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한 바를 정리한 글이다. 해당 유튜버의 표현을 많이 빌려다 썼다. 

링크 참조 : https://www.youtube.com/watch?v=_RATnU4bTXY

이 작품은 남겨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모든 우주인은 게이트 폭발 사건으로 인해 멸망하다시피 한 지구에서 피난해 우주에 남겨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4명의 사람과 한 명의 강아지 또한 모두 사연은 다르지만 과거의 사건에 갇히고 남겨진 사람들이다.

자신이 유일하게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 주었던 여자인 줄리아를 잊지 못하고 과거에 갇혀 우주에 남겨진 스파이크. 줄리아가 떠나고 그는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한다. 심지어 비밥호의 동료들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고, 누구와도 엮이지 않으며, 모든 일에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일관하며 인생을 흘러가는대로 보낸다. 그렇게 그는 줄리아가 떠난 과거에 남겨져있다. 

과거 ISSP의 형사였던 제트. 그 역시 조직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남긴 멈춰버린 시계와 함께 과거에 갇혀있다. 그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며 현상금 사냥꾼으로 살아가면서 현재를 묵묵하게 살아간다. 그 역시 전 여인의 기억과 그녀가 남기고 간 시계를 간직한 채 과거에 남겨져있다. 

제트와 스파이크 둘 다 과거의 후회에 남겨진 사람이라는 사실은 같지만, 그 둘의 차이점이 있다. 스파이크는 과거의 후회 때문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의 어떠한 꿈이나 목표가 있어서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없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자꾸 위험한 상황에 끌린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사건을 겪어야만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이 비로소 살아 있다고 느끼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반면 제트는 과거의 후회를 짊어진 채 현재를 묵묵히 살아간다. 제트는 연인이 남기고 간 멈춰버린 시계를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리고 과거의 연인과 다시 조우했을 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돌아왔을 땐 그 시계만이 남아 있었어. 단 한마디, 안녕이라고만 쓰인 편지와 함께... 이상하게 난 슬픔을 느끼지 않았어. 다만 현실감이 없을 뿐이었지. 그리고 점점 내 안에서 뭔가가 마비되어 가는 걸 느꼈지." 
이 말은 과거의 헤어진 사건에 대해 스스로 정리되지 않았지만, 그 후회의 감정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고 억누른 채 살아가고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페이 밸런타인. 그녀는 과거 우주선 사고로 의식을 잃고 냉동인간 상태로 54년을 보내더 그녀는 미래의 의료기술로 깨어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 못하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도, 이름도, 인생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채 덩그러니 우주에 남겨진 페이 발렌타인. 그렇기에 그녀는 모든 관계를 신뢰하지 못하고 거래처럼 대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자신이 버려질 상황에 처하면 먼저 그 관계를 놓아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페이의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특별히 큰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크게 실패한 것도 아니다. 그냥 삶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고 책임질 일이 점점 늘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누군지조차 아직 잘 모른다. 그냥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누군지조차 모른 채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느 정도의 단서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페이에게는 그런 단서를 제공해 줄 만한 기억이 없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뿌리를 잃은 채 방황하고,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기억나지 않는 과거에 묶여있다. 

스파이크나 제트는 과거의 후회라는 닻을 내려서 우주 한가운데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페이는 그런 후회의 닻을 내릴 기억조차 없어 우주에서 표류하는 우주선처럼 갈피를 못 잡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비밥호의 사람들은 모두 과거의 어떤 사건에 묶여있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후회의 늪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스토리를 진행시켜 감에 따라 주인공들이 후회에서 어떻게 벗어나는지에 관해 그리고 있다. 

후회는 왜 생기는 것일까? 후회가 왜 생기는지 알지 위해선 우선 후회가 무엇인지 정의해야 한다. 후회는 과거에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반추하면서 그때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하며 계속 곱씹어보는 느낌이다. 그럼 그걸 계속해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며 다시 더 나은 선택을 내리라고 우리의 무의식이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후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후회하는 마음을 인정해야 한다. 후회하는 그 마음을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후회가 남지 않을까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정말 신기하게도 과거의 후회스러운 선택을 한 것과 같은 비슷한 상황이 다시 찾아온다. 그러면 과거의 사건과 비슷한 상황이 왔음을 인지하고, 그 사건에서 후회스러웠던 선택을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미련이 없게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을 선택들을 계속해서 조금씩 쌓으면서 지금 현재에 살아야 한다. 

1. 후회하는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만약 그 상황이 다시 온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둔다.
2. 정말 신기하게도 인생을 살다 보면 자신이 후회스러운 짓을 했던 과거의 사건과 비슷한 상황이 다시금 생긴다. 그러면 그 사건 속에서 후회스러웠던 선택을 다시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한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런 후회하지 않을 선택들을 지금, 바로 여기에서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가며 현재를 내가 원하는 자아상처럼 살아가기 위해 충만하게 살아간다. 

위의 세 가지 단계가 후회에서 벗어나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방법이다. 결론은 후회는 어쩔 수 없다. 후회를 받아들이고 아파하는 과정을 겪어야지 후회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게 카우보이 비밥에서 말하고자 한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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