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서 1945년 해방부터 6.25를 거쳐 1987년 6월 항쟁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허영만 작가님의 만화. 예전에 <알쓸신잡 3>을 방영할 때 유시민 선생님이 추천했던 책인데 이제야 기회가 생겨서 읽어보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치하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그림실력이 뛰어났던 이강토. 해방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힘입어 머슴살이를 하지 않고 본인의 재능을 살려 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들을 토대로 한국이 해방부터 6.25 전쟁,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어떠한 시대적 전환을 맞이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그 후 대학생으로서 여러 학생 시위에 참여하는 이강토의 아들 이석주를 통해 한국 민주화 운동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강토와 석주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신념과 사회를 대하는 태도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강토와 아들 석주의 직업이 화가이고 그들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고민하고 직업적으로도 성찰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는 허영만 선생님이 한국 근대를 살아오면서 그림쟁이로써 느꼈던 고민들을 주인공에게 투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이념 전쟁을 하던 시대에 서로 적으로 만났지만 우여곡절 끝에 같은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강토와 그의 선배 희중이 나누는 대화가 인상깊었다.
희중 : 사랑이란 것도 부질 없는 짓이야. 이 전쟁 만큼이나. 내가 왜 시를 쓰는지 아나?그것도 이런 전쟁터에 와서...? 도피하기 위해서일세. 난 혁명의 선구자가 되느니 도피의 선구자가 되고 싶네. 강토 : 자학하지 말더라고요. 도피헌다는 분이 무슨 맘으로 전쟁에 뛰어들었당가요? 희중 : 그것 자체가 도피였지. 아녀자와 노약자들 틈에 있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했으니까. -오! 한강 2권중 강토 : 몸도 편허지 않은 것 같은디 늦기 전에 선배님 편으로 돌아가뿌시오. 필요허믄 나가 저놈들한테 증언할랑께..... 희중 : 네 걱정이나 해. 강토 : 대체 뭣 땀새 그러요? 느닷없이 공산당이 된 거요? 아니믄 나헌테 대한 의리 땜세 그러요? 희중 : 유치한 소리 그만해. 난 빨갱이도 파랭이도 아니야. 그저 있고 싶은 데 있는거야. 강토 : 그렁께 고집부리지 말고 신간 편헌 쪽에 가 있으란 말이오. 사서 포로 신세 될 이유가 뭐 있소? 일렬로 세워놓고 쏴 갈려뿔지나 않으믄 다행이고, 잘 돼봐야 돼지우리 거튼 데서 짐성 취급 당헐 것이 뻔한디...... 희중 : 그래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아도 되잖아. -오! 한강 2권중, (강토를 만나 북한군이 되었다가 남한군에 포로로 잡혀가면서 선배가 한 말.) |
이념과 이념, 그러니까 허상과 허상이 싸우는 전쟁에서 인간만 죽어날 뿐이다. 남쪽이나 북쪽, 어느 한 곳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던 시대에, 좌도 우도 아닌 그저 나로서 존재하고 싶다는 김희중 선배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한 개인의 가족사와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를 세세하고 재밌게 묘사한 만화이다. 한국의 근현대에 관심은 있지만 긴 글을 읽을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게 근대사를 가볍게 간접경험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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