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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25. 6. 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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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도망쳐도 좋다. (워킹홀리데이, 내 삶의 첫 탈출구)

지난 글에서 나는, 워킹홀리데이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밝혔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에게 그것이 어떻게 전환점이 되었는지를 설명하려면, 그때, 호주로 떠나기 전 나의 심리 상태부터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은 부끄럽지만,(많이 부끄럽다...) 나의 과거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20살 초반의 나는 평범했다. 대부분의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야자도 적당히 빠지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리고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술도 마시고, 가끔 수업도 빼먹으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의 나는 어쩐지 우울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그 당시 나는 평범한 학교 생활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매일같이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도 하고 술도 마시며 즐거운 생활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향할 때면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몰려왔다.

나 홀로 방 구석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면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나를 집어 삼켰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대학 생활의 나날들 아래, 깜깜한 어둠속 한치 앞도 안 보이는 끈적하고 아주 진한 안개가 낀 것처럼, 갑갑하고 불안한 감정이 그 무렵의 내 주위에 온통 깔려 있었다.


지금에 와서 회상해보면, 그 불안감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막막함에서 기인했다. 어딘가를 향해 가고는 있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다는 막막함. 나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고,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몰랐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마음 어딘가에선 ‘이건 아닌데’라는 울림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때는 세상에는 정해진 길이 있는 줄 알았다. 초중고 졸업 - 대학 - 취업 - 결혼. 그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실패한 인생이라며 떠드는 사회적 시선들.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도 감히 발을 떼진 못했다.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직감하면서도 정해진 루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겁쟁이. 무리를 벗어나 홀로 떨어지는 것이 무서운, 길을 모르는 어린 양. 그게 나였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 막막함. 그것이 그때의 나를 사로잡고 있던 감정들이었다. 현실은 그저 그랬고, 이상을 향한 마음은 컸다. 어떻게 하면 지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몰랐고,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모든 게 싫어졌다. 밝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이 사회도, 이곳에 태어난 나도. 자기혐오와 무력감이 마음을 잠식해갔다. 무기력한 날들이 반복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뭘까?”

“사는 데 의미가 없다면 살아갈 이유는 있는 걸까?”

몽롱한 감각 속에 살았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라는 표면에 붙어있지 못하고 허공에 붕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을 만나도 벽이 느껴졌고, 학기를 마치고 방학이면 한 발자국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게 어쩐지 버겁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방문을 잠그고, 그 안에 나를 가두었다. 살고 싶지 않았지만, 죽을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그저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겁먹은 상태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하지만 그렇게 바닥을 찍고 나니, 내게도 조금씩 변화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자주 상상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나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 가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고 나니, 이렇게 아무것도 못해본 채로 죽는 것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죽기엔 아직 세상이 궁금했다. ‘혹시 어딘가에 나를 이해해주고, 내가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장소가 존재하진 않을까’-그런 생각이 맴돌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이 단순한 생각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내게 우연한 사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우연한 사건들과의 만남이, 나를 내가 아는 세상 너머로 조금씩 이끌어주었다.

(나는 한 사람의 인생에는 겪어야 할 경험의 총량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충만하게 경험시키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우리를 경험을 쌓기 위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어떤 거대한 힘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농구를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농구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선배가 있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여유로워 보였다. 매사에 심각하고 침착하지 못했던 나와는 다른 선배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런 그를 조용히 동경했다. 하지만 별로 접점은 없었기에 그 선배와는 내가 군대에 입대한 이후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복학 후 어느 술자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는 세계 여행을 다녀왔다고 얘기 했고,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자 그가 더욱 멋져 보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 형은 이미 하고 있구나.’ ‘이미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나에게 여행이란 엄두도 나지 않는, 상상 속에서도 무서운 일이었다.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도 두려운데, 낯선 나라에 가서 낯선 문화를 경험하는 일이 엄청난 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검증되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게 무모하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고, 나도 내 마음속에만 있는 꿈을 실현 시켜보고자 하는 갈망이 들었었다. 어쩐지 이 형이라면 내 마음을 잘 알아줄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느냐고.

그게 첫 걸음이었다.


두 번째 우연은 과거 국토대장정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21살 무렵 나는, 제주도를 걸어서 한 바퀴 도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그곳에서 같은 조로 만난 한 형과 친해졌는데, 그 형이 나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었다.

역시 군대 입대하면서부터 연락이 끊겼었는데, 그 시기에 갑자기 그 형이 생각나서 오랜만에 무작정 연락을 했다. 그는 마침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형은 나에게 호주로 와서 같이 생활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건 그저 단순한 말이었지만, 그 순간 나에겐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대학교 선배와의 만남 이후 여행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있었기에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떠나려고 계획을 세우다 보니, 여행 경비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음을 깨닫고 조금은 주춤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마침, 낯선 나라에서 여행도 하고 일도 해서 돈을 모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적인 사건은, 한 여자아이 때문이었다.

나는 한 여자를 오래 짝사랑했다. 그녀는 20살의 같은 과 동기였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부터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어느 정도 대화를 해보고 나서부터는 호감이 확신으로 변했다.

그 이후로 대학 생활 내내, 군대를 가서도, 그리고 전역한 후에도 그녀를 좋아했었다. 약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찌질한 짓이란 찌질한 짓은 모조리 해봤다. 장난으로도 고백 하고, 술기운을 빌려 고백도 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모든 표현은 다 해보았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녀는 나를 친구로만 생각하고 남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왜 나는 안 되는 것일까?’

그녀를 짝사랑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고민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나조차 사랑하고 있지 못했구나.’

슬프게도 겉으로는 그녀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내심 속으로는 그녀와 잘 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누가 봐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자였지만, 그녀와 나를 비교해보면 나는 너무 초라했다. 그녀는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내가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먼저 나를 사랑하기로. 그러려면 지금의 찌질한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야만 했다. 매사에 당당하고, 여유롭고, 남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슬프지만 이제 그녀를 마음속에서 놓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했던 그 시간만큼,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하지만 같은 학교, 같은 공간에서 그녀와 계속 마주치는 건 쉽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내가 달라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떠나야겠다고. 다른 세상을 경험하자고.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새롭게 태어나자고. 이제는 오래 묵혀두었던 내 꿈을 펼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도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사실 맞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회피가 아니었다. 나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모든 계기들은 하나의 흐름이었다. 작은 우연들이 모여 나를 그 방향으로 이끌었다. 나는 결국 떠났고, 그곳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감 있는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변화의 시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해보려 한다.

 

 

/... 100일 프로젝트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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